1. 창립취지문
  2. 회장인사말
  3. 교훈해설
  4. 목표와 활동
  5. 연혁
  6. 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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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지와 교훈의 제정 경위
logo.jpg서울대학교의 배지는 미술대 학장을 역임한 장발 교수가 초안했다는 기록이 있다. 장발 교수는 가톨릭 가문으로 널리 알려진 장면 전 총리 가족이고 그 동생이 신부이기도 하다.

“The university emblem was designed by Chang Bal the dean of the School of Art, with a Latin phrase 'veritas lux mea.' (History of Law School, SNU. internet).

그러나 그 배지 안에 있는 “veritas lux mea"도 장 교수의 제안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설혹 장발 교수의 제안이라 해도 당시 교수회의 동의를 얻었을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당시에는 장리욱, 유진오, 백낙준 같은 분들도 교수단에 포함되어 있었고 교무처장은 언더우드 선교사였다. 그리고 물론 교수회의 의장이며 총장인 안스테드 박사의 의견이 반영된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VERITAS LUX MEA가 서울대학교 배지에 담긴 모토(motto)라는 것을 모르고 졸업하는 학생들도 많다. 또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라틴말로 되어 있어 무슨 뜻인지 모르기도 한다. 이 모토는 ‘진리는 나의 빛’(The truth is my light)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 합의이다. 그러나, ‘진리는 나를 비춘다’(The truth enlightens me)라는 해석도 있다.
2. 세계적 명문대 모토와의 비교
그렇다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교들은 어떤 모토를 제시하고 있을까? 우선 문명이 앞서 가는 나라들의 대표적 대학교와 특히 미국의 10대 대학교 (2010년도 평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대부분 라틴말로 되어 있고 더러는 영어, 독일어, 중국어로 되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일단 영어가 아닌 것은 영어로 번역된 것을 추적했다. 출처는 대부분 인터넷판 wikipedia이나 blog naver.com이다. 대소문자 사용은 그 학교에 따랐다.

University of Harvard : Veritas (Truth)
University of Oxford : Dominus Illuminatio Mea (The Lord is my light)
University of Cambridge : Hinc lucem et pocula sacra (From here, light and sacred knowledge)
Universite de Paris : Hic et ubique terrarum (Here and anywhere on earth)
Princeton University : Dei sub numine viget (Under God's power she flourishes)
Yale University: Lux et veritas (Light and Truth)
Columbia University : In lumine tuo videbimus lumen (In your light, we shall see the light)
University of Stanford : Die Luft der Freiheit weht (The wind of freedom blows)
University of Pennsylvania : Leges Sine Moribus Vanae (Laws without morals are in vain)
CIT :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
MIT : Mens et Manus (Mind and Hand)
Dartmouth College: Vox clamantis in deserto (The voice of one crying in the wilderness)
Duke University : Eruditio et Religio (Knowledge and Religion)
University of Glasgow : Via, Venitas, Vitae (The Way, The Truth, The Life)
칭화대 (중국) : 自强不息 厚德載物 (self discipline and social commitment)
University of Hong Kong : Sapientia et Virutus (Wisdom and Virtue)
Indiana University : Lux et Veritas (Light and Truth)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 Deus Lux Mea (God is my light)
Tokyo University: 미상
Humboldt Universitat Zu Berlin: 미상

이와 같은 교훈들을 살펴 볼 때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눈에 들어온다.

1) 대부분 라틴말로 표현되었다.
2) 진리(veritas)와 빛(lux)을 빈번히 사용한다.
3) 대부분이 기독교 사상을 담고 있고 또 출처가 성경인 것들도 있다. 성경구절 그대로이거 나 다소 변환시킨 것들이다.
4) 교육목표 지향적이면서도 매우 포괄성이 넓은 것들이다.
5) 간단명료한 표현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학교의 교훈인 VERITAS LUX MEA는 전 세계 일류 대학교들의 것과 비교하여 조금도 손색이 없다. 그리고 하버드, 옥스퍼드, 예일, 컬럼비아, 인디아나, 미국 가톨릭대학교의 교훈들과 기초적 사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발견된다. 그러면서도 다른 유명대학교 가운데는 결코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이 교훈을 정할 때 매우 많은 연구와 고심 그리고 합의과정이 있었을 것이 확실하다.

이런 배경에서 종합해 보면 결국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모교의 교훈은 진리 탐구라는 대학 본연의 사명과 탐구된 진리로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기여라는 두 바퀴를 잘 갖춘 교훈으로 평가된다.
3. 학문입국, 신앙입국
한국의 근대역사는 독립국가 건설이 최대 과제가 되어 왔다. 그리하여 독립국가 건설의 여러 방안들이 추진되어왔다. 그래서 생긴 말들이 정치입국(政治立國), 외교입국, 경제입국, 군사입국, 교육입국, 문화입국 등등이다. 민족과 국가를 사랑하는 분들이 그것을 위하여 크게 헌신해 왔으며 고귀한 목숨을 바치기도 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를 이상으로 삼는 한국 기독교는 ‘신앙입국’(信仰立國)이라는 측면에서 민족역사에 크게 공헌해 왔다. 그런 때에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사상은 교육입국, 과학입국, 학문입국, 도덕입국, 그리고 신앙입국을 실현시킬 기초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이 교훈을 초석으로 가진 모교 서울대학교가 통일입국에도 크게 기여하고 인류의 평화와 복지를 위하여서도 큰 일 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일은 우리 기독교 동문들이 앞장 서야 하겠다.

해리 안스테드 총장이 그의 총장실에서 자주 기도했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가 기도한 내용을 알 수는 없으나 우연이라기에는 너무도 필연적인 사건이 하나 있다. 한국인 총장인 제2대 이춘호 교수도 감리교 계통의 Ohio Wesleyan University에서 수학했다. 그 대학교의 교훈은 ‘너의 빛으로 우리가 그 빛을 보리라’는 성경말씀이다. 제3대 장리욱 총장은 신앙입국을 철저한 삶의 목표로 삼은 도산 안창호의 수제자였고 교회 장로였다. 그분이 교육학을 연구한 Duke 대학교는 장로교회가 설립한 학교이다. 그런 분들이 놓은 창학정신에 따라서 서울대인들 모두가 지금도, ‘가슴마다 성스러운 이념을 품고/ 이 세 상에 사는 진리 찾는 이 길을’(교가의 일절) 진지하게 걸어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심문할 때 로마 총독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 하고 그분에게 물었다. 그것은 오고 오는 모든 세대 모든 사람들의 질문이기도 하다. 참 진리란 과연 무엇일까? 당신은 그 참 진리를 영원한 빛으로 삼고 있는가. 그래서 다시 한 번 뼛속 깊이 새겨 본다 : VERITAS LUX MEA!

참고 :
미국 top 10 대학 교훈 바로가기
- 위 해설 : 이정근 - 국어교육 (1960), LA Union교회 목사, 미주성결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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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 2년간 재임
서울대학교의 초대총장은 해리 안스테드(Harry Bidwell Ansted) 박사(1893-1955)였다. 그는 1945년 10월 7일부터 서울대학교 전신인 경성대학(京城大學)의 총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국립서울대학교가 설립된 1946년 8월 22일부터 그 다음 해 10월 22일까지 초대총장이 되었다. 경성대학 재직기간을 통산하면 만 2년 15일간 서울대학교를 이끌어 온 셈이다.

그런데 그가 초대총장을 역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다. 또 있는 정보마저 정확하지 못한 것들도 보인다. 그 원인은 주로 세 가지 아닐까. 외국인이 초대총장을 역임했다는 점에서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민족주의적 감정이 그 첫째이다. 해방에 이어 국가를 통치하던 미군정청이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을 추진하는데 대하여 격렬하게 저항했던 ‘국대안 반대운동’의 영향이 그 다음이다. 게다가 그가 미군군목이었던 점에서 반기독교적 감정도 표출되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런 편견에만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 된다. 오늘의 서울대학교가 있게 된 데는 미국식 교육모형을 도입한 초대총장의 공로가 인정되어야 한다. 글로벌 시대에는 더욱 더 그렇다. 소아병적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있어서도 안 되고, ‘국대안 반대운동’에 찬사를 보낼 것만도 아니다. 게다가 기독교는 인류 보편종교가 된지 오래 되었는데도 아직도 외래종교로 내모는 것도 좁은 소견일 뿐이다.
2. 뜨거운 가슴, 냉정한 머리
그런 시각에서 해리 안스테드 초대 총장에 관한 사실들을 조금 더 밝혀 보려 한다. 그는 독일계 미국이민 가정에서 출생했다. 미국 서북부 워싱턴주의 큰 도시 시애틀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인구조사(census) 기록에 그와 그 가족의 이름이 남아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신앙적으로는 독일계 경건파에 속했다는 인상이 매우 짙다. 그가 다녔던 대학교육기관들과 또 직원이나 교수로 재직한 대학들을 추적해 보면 한 결 같이 보수성과 경건적 영성을 전통삼고 있다. 1913년 곧 20세에 입학한 Hillsdale College는 ‘자유의지 침례교도’(Freewill Baptists)들에 의하여 미시간 주에서 창설되었고 지금까지 모범적 대학으로 이어오고 있다. 이 대학은 미국 남북전쟁에서 노예해방운동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 전국에 널리 알려졌다. 400여명의 학생들이 전쟁에 참여했으며 링컨 대통령 편에 서서 흑인노예해방운동에 헌신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 미국정부가 ‘기독교적 학사정책 포기’를 조건으로 재정후원 제안을 했다. 그러나 그 조건을 수용할 수 없다 하여 단호히 거부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믿음으로 후원하는 개인독지가들의 재정기부로 학교를 발전시키고 있다.

안스테드는 Greenville University에서 비즈니스 전공으로 학사학위 하나를 더 취득했다. (이 대학에 대한 정보는 아직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런 다음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명문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 학교도 감리교회가 설립했으며 기독교 신앙을 창학정신으로 삼고 있다. 그 학교 설립자 가족의 한 사람이 한국선교윤허를 고종황제에게서 받아낸 맥클레이(Maclay) 선교사이다.

안스테드는 석사과정에서 수학하는 동안 Los Angeles Pacific College에서 교수생활 했다. 이 학교는 지금 Azusa Pacific University로서 Los Angeles 근교에 있으며 순수 기독교 신앙을 대학교육의 기초정신으로 삼는 대학교로 성장해 가고 있다. 한국인 학생들도 적지 않으며 특히 신학대학원에는 아시안센터를 코리아타운에 두고 있고 영어와 한국말 복수언어로 교육하고 있다. ‘God First'가 모토이다.

안스테드는 1944년 곧 51세 되던 해에 법학으로 Washington Springs University(College)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석사학위 취득 후 20년만이었다. 이는 안스테드 박사가 Seattle Pacific University(SPU)의 상과대학(College of Commerce) 교수와 특히 학장으로 재직하던 마지막 해인 1944년의 일이다. 대학교수로서 박사학위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이며 미국학교들의 관행으로 보아 SPU의 적극 후원도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1936년부터 8년간 재직했던 SPU는 2010년 현재 4천 명의 재학생을 가진 학교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 대학교는 1891년 자유감리교회(Free Methodist Church) 교단에 의하여 창설되었으며 그 교단의 신앙은 성경을 중시하는 보수적 성향이 강했다. 학교의 모토는 “Engaging the Culture, Changing the World" (문화에 참여하고, 세계를 변화시키고)로서 선교적 색채가 강력한 인상을 준다. 이 학교 출신들이 신학수업을 받고 목회자가 된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학교이다. 현대 영성인물의 대표자로 존경받는 Eugene Peterson도 바로 이 학교 졸업생이다. 미국 기독교대학협회(The Christian College Consortium) 회원교이다.

이런 배경에서 공부하고, 학교행정에 참여하고, 교수생활을 했던 안스테드는 1944년 세계제2차대전이 막바지에 달하였을 때에 돌연 미국군인으로 입대하게 된다. 그의 나이 51세였다. 그 나이에 입대하였다면 일반장교는 아니고 그가 군목(army chaplain)이었음이 맞는다. 그리고 소집에 의한 입대보다는 자원입대가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그가 언제 신학수업을 받았는지 그리고 기독교 지도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목사안수가 어떤 절차로 이루어졌는지 등에 관하여는 심도 있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 여기에서 확실하게 해 두고 싶은 것은 안스테드는 기독교 신앙인들이 이상적으로 삼는, ‘뜨거운 가슴, 냉정한 머리’를 갖춘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3. 역사를 입체적으로 보라
대표적 국립대학교인 서울대학교가 미군정청에 의하여 여러 학교의 통폐합과정을 통하여 설립되었다는 사실과 초대총장이 외국인이었다는 데 대하여 비판들이 있다. 다음과 같은 사례는 그 일부분이다.

“그래도 미군정청은 눈하나 까딱하지 않고 아예 한 술 더 떠서 초대총장으로 해리 안스테드라는 미국인을 앉힌다.” (www.donga.com 일자 미상).

“특히 서울대의 첫 총장으로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이 그것도 목사출신 대위에 불과한 해리 안스테드(Harry Ansted)가 부임한 사실은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oxygen.korea.co.kr, 한국학술진흥재단. 2005, 19쪽)

이처럼 해리 안스테드 초대총장이 자격 미달의 사람인 것처럼 폄하하는 것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그는 학위로 보나 대학의 교수경력과 행정경력으로 보아 대학총장이 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으로 평가된다. 그런 점에서 ‘목사 출신 대위에 불과한’이라든가 혹은 ‘일개 해군대위’라는 표현은 지나친 편견일 뿐이다.

그리고 그가 한국인들의 저항 때문에 총장직을 중도에 하차했다는 해석도 정당하지 않다.
(참조: 서울대학교 60년사 834쪽 이하). 그런 오해는 역사를 평면으로 본 결과에서 온다. 역사는 입체적으로 보아야 한다.

국대안 반대운동 당시에 총장을 한국인으로 교체하여 달라는 요구가 강력하게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미군정청이 그런 요구에 굴복하여 교체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인 제2대 총장 이춘호 박사가 7개월 재임, 제3대 장리욱 총장이 8개월 재임인 것을 보면 안스테드 총장의 재임기간이 통산 2년이 넘는데도 동맹휴학 등으로 도중하차했다고만 보아서는 안 된다. 한국인들의 저항 때문이라면 훨씬 더 일찍 사임했어야 했다.

안스테드 총장의 교체는 미국의 한국군정 전체적 정책에서 보아야 한다. 군정은 과도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적절한 절차를 거쳐’(유엔결의안) 독립국가를 설립하는 정책에 합치되는 조치로 해석된다. 따라서 안스테드 총장이 사임한 것은 1947년 10월 24일이고 그 6일 뒤에 한국인 안재홍이 군정장관이 임명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자격을 갖춘 사람이 있다면 한국인으로 교체해 나간 것이 미국의 정책이었던 점도 유의해야 한다.

안스테드 박사가 초대 총장으로서 서울대학교 발전에 공헌한 것들이 무엇일까? 우선 법문학부와 의학부만 있던 경성대학을 국립 종합대학교로 승격시킨 일을 들어야 한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직분을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일단 맡으면 완성해 내는’ 목표지향적 지도력을 특징으로 삼는다. 따라서 그같은 엄청난 소용돌이에 굴복하지 않고 사명을 완수했다고 본다.

초대 총장이 한국인이 아니었다는 것은 민족의 일원으로서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춘호, 장리욱, 백낙준 등 서구 유학파들로 그 시작부터 학교를 이끌고 가는 지도적 그룹을 삼은 것도 안스테드 총장의 장점으로 본다. 그 이후 서울대학교가 서구 특히 미국에서 많은 교수요원을 육성할 수 있었고 이는 글로벌화에 기초작업이 되었다.

서울대학교의 교훈을 Veritas lux mea 곧 ‘진리는 나의 빛’ 혹은 ‘진리는 나를 비춘다’는 것으로 확정한 것도 초대총장으로서의 그의 업적으로 보아야 한다. 이에 대하여는 별도 해설을 참조하기 바란다.

- 위 해설 : 이정근 - 국어교육 (1960), LA Union교회 목사, 미주성결대 명예총장